뇌가 섹시한 남자, 이른바 ‘뇌섹남’은 이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인문학 어벤져스라 불리는 남자들인데요.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작가 유시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뇌 과학자이자 교수 정재승 그리고 작곡가 유희열의 농도 직은 ‘지식 액션’은 화려한 격투신과 총격신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수다를 떠는 도중에 책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습니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가 아니라 왠지 안 보면 안 될 것만 같기에 읽고 싶은 7권의 책들. 인문학 어벤져스들의 추천도서를 지금 만나보시죠.
한국 문학사의 거목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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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작가의 대표작 <김약국의 딸들>, <토지>는 중∙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우리에게는 익숙한 소설입니다. 두 작품 모두 각색되어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죠.
뇌섹남 5인방은 통영을 여행하면서 박경리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는데요, 작가가 통영 태생이기도 하지만,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 역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소설은 한 집안의 몰락을 통해 우리 민족의 비극적 근대사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의의가 깊습니다. 등장인물의 모델이 된 통영 세병관 좌측 간창골의 한 약국 집안에서 직접 작가를 찾아와 항의를 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죠. 그만큼 문체에서 생동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생생한 문장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김약국의 딸들>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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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지>의 경우에는 대하 소설답게 20권이나 됩니다. 그 방대한 양에 압도되어 감히 읽어볼 엄두가 쉽게 나지 않죠. 다독가로 유명한 유시민 작가도 징역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완독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 책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책 중에서 우리말 어휘를 늘리는 데 가장 훌륭하게 도움이 된 책입니다. 뜻이 이해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그 단어 혹은 표현이 어떤 뉘앙스를 가진, 어떤 메시지를 지닌 표현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돼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中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책에 위와 같은 내용을 밝혔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우리말 표현을 배우고 싶다’, ‘나도 글 잘 쓰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께 박경리 작가의 <토지> 필히 추천 드립니다
검을 휘두르듯 강한 필치
이순신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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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하면 이순신 장군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격파한 한산도 대첩은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니까요.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7년(1592~1598)동안 전쟁 중에 거의 매일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요, 이 기록을 엮어 만든 책이 <난중일기>입니다.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는 <난중일기>에는 “원균에 대한 디스가 장난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기록 속에는 전시 상황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각, 가족과 전우에 대한 걱정 등 인간적인 면모 등이 담겨 있답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소설 <칼의 노래>를 쓴 작가 김훈은 <난중일기>를 읽고 “무인들이 한번에 칼을 휘둘러 사태를 정리해버리듯 한 번으로 끝내버리는 문장”이라고 밝힌 바 있어요. 검을 휘두르는 듯한 이순신 장군의 강한 필치를 느껴보고 싶다면 <난중일기>를 꼭 한번 읽어보세요.
1930년대 모던보이 감성
백석 <백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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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시인 백석은 조선일보 기자 시절, 동료와 함께 통영에 왔다가 ‘난(蘭)’을 보고 사랑에 빠져 그녀를 보기 위해 몇 번씩이나 그곳에 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죠. 속상한 마음에 낮술을 거하게 한잔 걸치고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시 한편을 읊조리는데요. 그 시가 ‘통영2’입니다. ‘통영2’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고, 백석 시인이 앉았던 그 충렬사 계단 앞 비석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통영2’를 비롯한 백석의 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북쪽 지방 방언의 사용,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 혹인 민속 신앙 등의 향토적 소재, 그리고 극도로 절제된 주관적 감정 등이 대표적입니다. 바로 이러한 특징들은 다른 모더니즘 시인과 차별화되는 요소로서, 백석의 시가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유랍니다. 이처럼 1930년대 경성 거리를 거닐던 모던보이의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백석 시집>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옥중 편지가 전하는 역사
네루 <세계사 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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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해드렸던 <난중일기>가 진중일기라면 이번에는 옥중편지입니다. <세계사 편력>은 인도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다 체포된 3년 동안, 감옥에서 외동딸에게 쓴 196통의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온 가족이 투옥되어 혼자가 된 딸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키워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죠.
또한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서술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대륙의 역사를 균형 있게 다룬 세계사서입니다. 당시 지식인으로서의 관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인데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싶거나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필독해야 할 도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운
조정래 –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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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섹남’ 5인방의 다음 여행지는 전라남도 순천과 보성이었습니다. 각자 여정을 마친 후에는 보성여관에 모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보성여관은 소설에 등장하는 ‘남도여관’의 모델이 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1983년 연재가 시작된 <태백산맥>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의 필독서’, ‘대한민국 분단 문학의 새로운 지평’ 등 갖가지 수식어구와 함께 1,500만 부 판매라는 ‘한국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죠.
<태백산맥>은 1948년 여순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전쟁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단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1970~80년대 당시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에 의한 좌/우 대립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분단의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살펴보고 싶으신 분들께 <태백산맥>을 추천해 드립니다.
이상과 현실의 끝없는 대립
김승옥 – 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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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알쓸신잡’에 가장 어울리는 소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입니다. 그만큼 유명하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진(霧津)은 실재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고향인 순천을 모티브로 꾸며진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상’을 뜻하죠.
반면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서울은 ‘현실’을 나타냅니다. 소설 속에서는 현실과 이상이 끊임없이 대립합니다. 이러한 대립은 무진에 도착한 뒤, 한 여인을 만나 ‘내연 관계’를 맺은 이후에 점점 증폭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아내의 ‘전보’를 통해 극대화되고 급기야 그녀에게 쓴 편지를 찢어버리면서 ‘펑’하고 터져버립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항상 존재합니다. 나아가 선택의 기로에 마주하게 되죠. 만약 여러분이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무진기행>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아닌 다양한 외적 상황의 혼재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완독하면 좋을 법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독서란 어쩌면 다가가고 싶으나 다가갈 수 없는 짝사랑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네요. 두 시간이면 다 볼 책 한 권 읽을 여유조차 없어, 몇 날 며칠을 가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둡니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고, 책 읽기가 습관이 아닌 쾌락으로 꾸준히 책 읽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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