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이 파래졌습니다. 흰 용지에 검은색 글씨,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영수증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글자 색이 파란 영수증이 많아졌습니다. 왠지 시각적으로 산뜻한(?) 느낌도 듭니다. ‘친환경 영수증’이라는 풍문도 들리고요. 심지어 SNS에 인증샷으로도 종종 올라옵니다. 파란 영수증이 일으킨 소소한 파란이랄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영수증 글자 색은 대체 왜 파래진 거죠?
열받으면 본색을 드러내는 감열지
영수증 용지(감열지)의 글자들!
정확히 말하면 ‘글자 모양으로 발색된 흔적들’이겠죠?
우선 영수증 용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영수증 용지는 일반 용지와 인쇄 방식이 다른데요. 이때 일반 용지란, 잉크나 토너(toner)를 종이에 묻혀 글자와 숫자 등을 인쇄할 수 있는 종이를 가리킵니다. 영수증 용지는 잉크나 토너를 사용하지 않아요. 대신 종이 표면에 특수 염료(약품)가 칠해져 있죠. 열이 가해지면 용지에 색이 나타납니다. 이런 종이를 감열지(感熱紙, Thermal Printing Paper)라고 합니다. ‘열을 감지하는 종이’인 것이죠.
감열지의 경우, 열을 어떤 모양으로 가하느냐에 따라 용지의 발색 형태가 결정됩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런 원리입니다.
영수증 출력기가 ‘짬뽕 6,500원’이라는 모양으로 열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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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에 그 모양대로 발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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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우리는 ‘글자’로 인식한다.
‘왜 파란 거냐?’가 아니라, ‘왜 검지 않은 거냐?’
오대수(최민식 분): “왜 날 가둔 거냐?”
이우진(유지태 분): “왜 오대수를 풀어줬을까, 이렇게 물어야죠.”
- 영화 <올드보이> 중
파란 영수증에 관해서도 위와 비슷한 대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왜 파란 거냐’가 아니라 ‘왜 검지 않은 거냐’, 이렇게 물어야 좀 더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데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수증의 발색은 특수 염료에 열이 가해질 때 일어납니다. 왜 검지 않은 거냐? 답은 간단합니다. 검은색 염료를 쓰지 않기 때문이죠.
영수증 용지 제작 시, 국내 여러 종이 회사들이 수입산 염료를 사용합니다. 주 수입처는 중국 업체였는데요. 그동안 영수증 글자 색이 검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업체로부터 수입한 염료가 검은색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업체가 지난해 영업 정지를 당합니다. 염료 생산 과정에서 환경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 업체가 중국 내 검은색 염료 생산 1위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감열지용 검은색 염료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하는데요. 이 업체는 그 중 45%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발생했고, 검은색 염료 값은 치솟았죠. 그래서 종이 회사들은 저렴한 파란색 염료를 수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파란 영수증이 우리 일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죠.
새삼 체감하는 중국발 나비 효과
파랑이냐 검정이냐, 이것은 영수증의 색깔론?!
한때 ‘파란 영수증=친환경 영수증’이라는 낭설이 돌기도 했습니다. 파란색 염료가 쓰이게 된 배경이 오인된 탓일 텐데요. 특정 업체의 검은색 염료에서 환경 유해 물질이 검출된 사실이, 모든 검은색 염료가 비환경적이라고 왜곡되었기 때문이죠. 여기에 대체재로 등장한 파란색 염료는 환경친화적일 것이라는 추측까지 보태졌을 테고요.
물론 영수증의 색깔론(?)은 친환경/비환경의 논의와는 무관합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중국의 파급력은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삼양 in 중국’ 콘텐츠에서도 중국발 나비 효과에 대해 살펴본 바 있었죠?
(* 관련 콘텐츠: 「[삼양 in 중국] 중국이 나서면 왜 세계가 출렁일까?」 saysamyang.com/321)
영수증 한 장도 꼼꼼히 챙기는 나는야 스마트 컨슈머!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됐다는 것! 그전에는 몰랐던 ‘감열지’도 새롭게 알게 되었잖아요. 영수증 글자 색 하나까지도 꼼꼼히 살펴보는 자세, 이것이 바로 흔한 스마트 컨슈머의 라이프스타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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