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토르에게는 있지만 헐크에게는 없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슈퍼히어로들은 ‘이것’의 유무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바로, 무기이죠. 엄청난 괴력의 헐크는 몸 자체가 곧 무기이지만, 캡틴 아메리카나 토르는 각각 특수 금속으로 제작된 방패와 망치(묠니르)를 갖고 다닙니다. 아, 울버린은 전자와 후자의 중간쯤 되겠네요. 본래는 손에서 기다란 뼈 세 개가 튀어나오는 돌연변이였지만, 뼈를 합금 소재로 대체하는 수술을 통해 더 강력한 돌연변이가 되었으니까요. 휴대형이 아닌, 체내 주입형 무기랄까요.
무기는 그걸 지닌 슈퍼히어로의 시그니처이기도 합니다. 커다란 별이 그려진 원형 방패가 캡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것처럼요. 이 대목에서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듯합니다. '방패=캡틴 아메리카'라는 등식이 '번개창=제우스', '삼지창=포세이돈' 같은 식으로도 적용되니까요.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앤트맨> 포스터.
개미만큼 몸을 줄인 앤트맨이 ‘방패’와 ‘망치’ 위에 서 있습니다.
두 ‘무기’의 주인들처럼, 앤트맨 역시 마블 캐릭터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IMDB (http://j.mp/2qDXgvB)
‘방패 제작 전문가’ 헤파이스토스가
캡틴 아메리카를 만난다면?
앞서 언급한 슈퍼히어로들은 미국 마블 엔터테인먼트(Marvel Entertainment, 이하 마블)가 창조한 캐릭터들이죠. 며칠 후면 마블의 신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개봉합니다. 관객들의 기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무기'입니다. 예고편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낯선 방패를 들고 있었고,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의 망치는 부서졌었죠. 새 방패의 위력, 망치를 대신할 새로운 무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일 듯합니다.
마블 슈퍼히어로들의 세계에는 초강력 금속이 존재합니다. 울버린의 골격인 아다만티움(Adamantium), 캡틴 아메리카 방패와 블랙팬서 슈트의 재료인 비브라늄(Vibranium), 토르 망치에 쓰인 우르(Uru). 이 세 가지를 '마블 3대 금속'이라 하죠. 마블의 주요 무기들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입니다. 이 금속들이 히어로들에게 슈퍼 파워를 주는 것이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포스터.
주인공의 모습도 영화 제목도 없지만, 방패 하나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IMDB (http://j.mp/2J29t4L)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 속 무구(武具)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헤파이스토스(Hephaestus)’입니다. 야금(冶金)의 신, 불의 신, 대장장이 신으로, 올림포스 12신에 속하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레전드급’ 메카닉인 헤파이스토스! 그가 제작한 대표적인 무기들을 살펴보죠.
사냥 신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
전쟁 신 아테나의 방패
반신반인 헤라클레스의 방패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방패
제우스의 아들 폴리데우케스의 무쇠 주먹
방패만 세 가지입니다. 왜 헤파이스토스는 방패를 3종이나 제작했을까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방패는 힘과 용기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당대 학자들은 방패를 칭송하는 글도 남겼습니다. 헤시오도스가 썼다고 전해지는 480행 서사시 「헤라클레스의 방패」, 호머의 『일리아스』 제18권에 적힌 아킬레우스의 방패 관련 내용이 가장 유명하죠.
아들 아킬레우스가 쓸 방패를 살펴보는 테티스(왼)
우락부락한 사내(오른)가 헤파이스토스입니다.
16~17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품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j.mp/2JPP58a)
특히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총 스물네 권으로 구성된 『일리아스』에서 약 한 권 분량에 걸쳐 칭송되는데요. 그럴 만한 무기입니다. 헤파이스토스가 하루 만에 완성한 최강의 방패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방패뿐 아니라 투구를 비롯한 각종 보호구들까지 풀세트(?)로 만들어냈다는 사실!
헤파이스토스에게 '마블 3대 금속'이 제공된다면 어떤 무기들이 탄생할지 궁금해지네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필적할 캡틴 아메리카의 레전드급 방패가 만들어질지도?!
토니 스타크보다 먼저
로봇을 만든 헤파이스토스
마블의 캐릭터 토니 스타크는 가히 '인간계' 최고 메카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 시스템 자비스와 함께 아이언맨 슈트를 비롯한 최첨단 전투 로봇을 만드니까요.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이미 고대에 로봇을 만든 '신계' 최강 메카닉이죠.
첨단 장비명에는 종종 '사이버(Cyber)'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이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퀴베르네테(Cybernetes)'에서 유래한 말인데요. 그리스어로 '키잡이'라는 뜻이죠. 지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에 해당하는 장치입니다. 토니 스타크의 자비스처럼, 헤파이스토스에게는 로봇(!) 조수들이 있었습니다. 영어권 나라에선 ‘골든 메이든(Golden Maidens)’이라 부르는데요. 여성 인간의 형상을 한 이들에게 내장된 칩이 바로 퀴베르네테였죠.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화학자였던 고(故) 이윤기 선생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최고 걸작품은 바로 완벽한 로봇입니다. 그의 대장간에는 그가 손수 금으로 만든 여자 조수가 둘 있었다고 하는데, 주인이 맡기는 일을 척척 해낼 뿐만 아니라 말할 줄도 알고 알아듣기도 했다는군요. 기원전 8세기 사람인 헤시오도스의 기록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들이 바로 ‘퀴베르네테스’(Cybernetes), 즉 ‘키잡이’(steersman)가 내장돼 있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라는 뜻입니다.
_ 「이윤기의 과학은 신화 따라잡기 - 로봇 개념 창시한 신 헤파이스토스」, 『과학동아』 2001년 6월호, 165쪽
(맨 위부터 시계방향) 아이언맨 슈트 프로토타입인 ‘마크 II’,
SF영화의 시초로 평가받는 <메트로폴리스>(1927) 포스터, <스타워즈> 시리즈의 로봇 ‘C-3PO’.
헤파이스토스의 ‘골든메이든’도 위 이미지들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이미지 출처: IMDB(http://j.mp/2JPonwu), Wikipedia(http://j.mp/2qEqzhI, http://j.mp/2JSmhfw)
헤파이스토스는 로봇 조수들뿐 아니라 외눈박이 거인족 퀴클롭스(Cyclops)의 도움도 받았어요. 퀴클롭스(복수형은 '퀴클로페스'라 합니다) 삼 형제인 아르게스, 브론테스, 스테로페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일했는데요. 이들의 실력 또한 만만찮습니다. 신들의 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지옥의 신 하데스에게 각각 번개창 아스트라페, 삼지창 트라이던트, 착용 즉시 온몸이 투명해지는 투구 퀴네에를 제작해줬었죠. 이런 그들을 자신의 대장간 직원들(?)로 고용할 정도였으니, 헤파이스토스의 위상은 실로 신화적이었나 봅니다.
1742년 프랑스의 조각가 기욤 쿠스투가 만든 헤파이스토스 대리석상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j.mp/2JPpQTw)
마블 세계관만큼 흥미진진한 ‘신화’
그리스 신화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신화들은 한마디로 '콘텐츠 보고'입니다. 오늘날 생산되는 다양한 이야기, 캐릭터 등의 원형을 제공했기 때문이죠.
마블의 슈퍼히어로들 또한 여러 신화 속 신들과 닮았습니다. 일례로 토르는 북유럽 신화 속 동명의 신을 참고한 캐릭터죠. 블랙 팬서 또한 아프리카 신화에서 신성시되는 표범(panther)을 재해석한 가상 인물입니다.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고대 영웅신화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IMDB (https://goo.gl/1xTzLv)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개봉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계실 마블 팬 여러분, 슈퍼히어로들과의 설레는 만남에 앞서, 신화 속 신들과의 모험도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인간계 너머 신계로 지적 시야를 확장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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