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물건 살 때마다 “스뜌삣!”이라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는 분들, 참 많아졌습니다. ‘통장 요정’이라 불리는 재테크 고수 개그맨 김생민 씨의 영향 때문이지요. 팟캐스트 방송이었던 <김생민의 영수증>은 이제 공중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영수증을 재테크 고수의 시선으로 신랄히 비평(?)한다는 참신한 콘셉트와 더불어, 혹평 일갈인 “스뜌삣!”과 극찬 환호인 “그뤠잇!” 같은 유행어까지 성공시킨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우리―보통 사람들의 소비생활에 제법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날선 비판 어조가 아니라, 유쾌한 기분으로 각자의 소비생활을 반성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유의미하지요. 또한, ‘슈퍼 스뜌삣 ― 스뜌삣 ― 그뤠잇 ― 슈퍼 그뤠잇 ― 슈퍼 울트라 그뤠잇’처럼, 마치 영화 한 편에 별점을 매기듯 소비생활에 등급을 부여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슈퍼 스뜌삣’과 ‘스뜌삣’ 등급에 해당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자성의 시간. ‘지르머(지름+er, 지르는 자)’를 명상한다! 아, 소비를 당장 멈추자는 취지가 아니라요, 대관절 ‘소비’라는 것이 뭔지나 한번 생각해보자는(시간 여유가 있다면 사유도 해보자는) 겁니다.
“이거 왜 샀어?”라는 물음에 뭐라고 답하십니까
2000년대 초반, 어느 인문예술계 대학생들 사이에서 참으로 해괴한 말이 잠시 출몰했다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는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고 싶어서 우는 거야!”라는. 공감대 형성이라는 장벽을 넘기엔 너무나도 마니악한 말이었던 바, 결국 유행어로는 승격되지 못한 채 소멸하고 말았지요.
십여 년이나 지난 이 말을 소환해봅니다. 이렇게 바꿔서요. “너는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고 싶어서 사는 거야!” 어떠십니까. 듣기에 영 불편하신지요. 이 말은 말입니다, 부제로 적어놓은 “이거 왜 샀어?”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할 경우 단박에 치고 들어올 일침일 수 있습니다. 비약이 아닙니다. 이 일침의 가능성은 이미 저명한 학자도 오래전 경고한 바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군상을 평한 문장입니다.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무언가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을 깨우는 문장이기도 하지요. 타인이 “이거 왜 샀어?”라고 물을 때 답이 없다는 건, 자신이 “이거 왜 살까(이걸 왜 사야 할까)?”라는 질문 없이 ‘이것’을 구매해버렸음을 방증합니다. 즉, 그냥 사고 싶어서 산 것. 소비 행위 자체를 소비해버린 거랄까요. 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위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우리가 ‘그냥’ 사는 것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느낀 특정한 이미지와 유사한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 ‘이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지금의 자신이 싫어요?
앞서 설명한 대중의 소비 심리를 포착한 세력들(?)은 ‘제품’ 그 자체를 광고하는 대신, 해당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취득하게 될 ‘이미지’를 선전합니다. 그 이미지란, 요즘 자주 쓰는 말로 ‘라이프스타일’이라 하지요. 어떤 제품의 명칭 앞에, 그 제품의 광고 모델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게 일반적인 시대입니다. OOO 냉장고, OOO 밥솥, OOO 세탁기, OO 정수기, ···.
당신이 만약 OOO 냉장고를 구입했다 칩시다. 당신은 물론 냉장고가 필요했을 테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실은 냉장고보다 더 필요했던 건 OOO라는 모델(연예인)이 광고에서 보여줬던 우아한 ‘이미지―라이프스타일’ 아니었나요?
이쯤에서 질문은 더욱 뾰족해지고, 우리 내면의 정중앙을 바로 겨눕니다. 이 질문에 찔리느냐, 아니면 피하느냐에 따라 우리 소비생활의 향방은 극단으로 갈리지요. 질문의 정체는 바로···
이 질문을 좀 더 바짝 벼려보겠습니다.
이건 마치 날카로운 단도를 자기 가슴을 향해 들고 있는 형국이군요. 일단은 계속 들고 있어 보세요.(벌써 찌르거나 내려놓진 마시고요.) 아직 할 이야기가 더 남았거든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은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
올해 7월 출간된 위 책의 저자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어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세계적, 역사적 불평등을 흐리고, 부와 계급, 성별 양극화의 문제를 은폐시키는 작용을 한다”라고 분석한 어느 논문의 구절도 인용하고 있지요. 우리가 무심코 (트렌드 키워드랍시고) 쓰는(남발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도록 요구하는군요. 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한가 하면, 남의 인생(또는 조작된 인생/환상)을 내 인생으로 소유하려는, 내 삶에 곧장 적용하려는 무리한 욕구를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위 책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물욕 없는 세계’란, 이것저것 구입/소유함으로써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이미지―라이프스타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기존의 소비 방식이 흐려지고, 서서히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는 새로운 소비 문화가 번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표현입니다. 물질 과잉 시대에 현기증을 느낀 소비자들이 점차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물건들을 솎아내 사거나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즉, “이거 왜 샀어?”라는 질문에 자기만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소비자 유형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욕 없는 세계』에 따르면, 이러한 소비자 유형은 ‘내 물건’은 적지만 ‘내 라이프스타일’이 확고한 사람들입니다. 앞서 비판적으로 바라본 ‘라이프스타일’이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의 산물이라면, 후자 쪽은 소비자 개개인이 스스로 조성한 셈이지요.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에 나온 “자신의 우주는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은 자신이 확인해야 하는 게지요.
이 책의 저자는 ‘뭐든지 다 파는’ 백화점과 상대적인 개념으로써, ‘필요한 것만 파는’ 세계 각지의 편집숍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직접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내용도 담았고요. 읽어볼 만한 인터뷰이들의 답변 세 가지를 인용해봅니다.
‘사다’에 ㄹ을 붙여봐요··· ‘살다’
무언가를 사는 이유는 결국 (지금보다) 좀 더 잘 살고 싶어서일 겁니다. 그래요. ‘잘 살고 싶어서’ ‘잘 사는 것’은 괜찮습니다. 잘 사서 잘 살게 된다면 ‘내 라이프스타일’이 구축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라면 곤란해요.
앞에서 인용한 인터뷰이 답변 중 “자기 주파수”라는 표현에 주목해보고 싶군요. 우리는 과연 자기 주파수와 맞는 물건을 소비하고 있는가. 아니, 그보다 먼저, 내 주파수를 알고 있기는 한가. 엉뚱한 주파수에 맞춰 이것저것 사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런 뜨끔함도 느껴지네요.
‘지르머’를 명상한다, 라는 거창한 제목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스뜌삣과 슈퍼 스뜌삣 등급에서 아마도 한참은 머물러야 할 우리 보통의 소비자들을 위한 짧은 메모를 남기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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